질서있는 석탄발전 퇴출…'발전 5개사 통합'이 먼저다 [김경식의 E3 이야기]

입력 2022-03-29 17:11   수정 2022-03-30 00:03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장면 정부까지 전력산업은 통합과 분할, 공영화와 민영화라는 긴 논쟁 끝에 5·16 군사정부에서 한국전력으로의 단일화 및 공영화 정책을 수립했다. 한편 2000년대 초 정부는 발전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과 석탄발전 5개사로 분할한 뒤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매각 불발로 중단된 뒤 2050탄소중립 시대를 맞게 됐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전원이라는 전력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았다. 따라서 석탄발전 5개사를 재통합해 원가 절감과 질서 있는 퇴출을 하고, 그에 따른 인력은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1887년 3월 6일 밤, 명성황후 시해(1895년) 장소로 잘 알려진 경복궁 안쪽 건천궁의 백열전등에 불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 중국 자금성과 일본의 궁성보다 2년이나 앞섰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견한 지 8년 만에 서울에 전등이 켜졌으니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선정부는 외교 사절단(보빙사)의 미국 파견(1883년)을 계기로 전력산업의 발전방향을 직접 체험하고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갑신정변(1884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으나 1887년 에디슨의 대리인인 프레이저로부터 전등설비를 구매해 건천궁에 750개의 백열전등을 밝혔다.


이렇게 전등은 일찍 밝혔으나 정작 전기를 본격 생산할 한성전기회사는 10여 년이 지난 1898년에 설립된다. 아관파천(1896년) 전후 중국, 일본, 러시아의 경쟁적 이권 개입에 고심하던 고종은 이를 탈피하고자 자신의 개인자금 10만원과 미국 차관 10만원으로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러일전쟁(1904년) 승리 후 일본은 노골적으로 이를 뺏고자 했고, 결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09년 8월 일한와사㈜에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1930년대 초 한반도 전역에 무려 63개의 전력회사가 영업할 정도로 전력산업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남한은 극심한 전력난을 겪게 된다. 해방 당시 발전능력은 북한 88.5%, 남한 11.5%였지만, 남한의 화력발전은 북한의 수력발전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발전 실적은 95.7% 대 4.3%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으로의 송전마저 중단했다.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장면 정부를 거치면서 수력과 화력발전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어느 정도 수요는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 3사(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의 지속적인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이 꾸준히 논의됐다. 구조조정은 두 방향에서 논의됐다. 3사를 한 회사로 통합할지와 국·공영화 대 민영화가 쟁점이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장면 정부는 한 회사로의 통합과 민영화 방침을 세웠으나, 곧이어 등장한 군사정부는 1961년 7월 1일 3사 통합 및 국영화한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를 발족시켰다.(오진석 《한국 근현대 전력사업사》 1898~1961)
민영화냐, 국·공영화냐 수십년간 논쟁
한전은 이후 1978년부터 원자력발전을 추가하면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일반 국민에게 고품질의 전력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한편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민영화 정책에 따라 1989년 한전 주식 21%를 국민주로 매각했다. 그리고 1994년 7월 ‘한국전력공사 경영진단반’을 구성해 한전 민영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1999년 1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기본계획에 따라 2001년 4월 2일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사(한국수력원자력, 남동·동서·중부·서부·남부발전)로 분할했다. 그리고 발전부문을 경쟁시장으로 하는 전력거래소(도매시장)를 개설했다. 또한 민영화 추진 일정에 따라 1차로 남동발전 매각을 발표했으나(2002년 9월 7일) 투자수익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유찰됐다. 이후 모든 매각 일정은 차질을 빚었다. 배전부문도 당초 2004년 5~6개사로 분할한 뒤 2008년 12월까지 민영화한다는 게 기본계획이었으나 중단됐다.

한편, 한전 발전부문 분할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전력산업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2050 탄소중립에 따라 현재 37%(269.6백만CO2eq)인 발전부문의 이산화탄소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분산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2050년이 되면 전기 수요는 지금의 두 배(1215TWh)로 늘어나게 되는데 송전탑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적용돼 최적화된 에너지 사용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재생에너지 활용률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시프트(탄소중립, 분산전원, 산업융합)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배전부문의 분할 및 민영화를 통한 경쟁적 전기요금체계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2월 16일자 DEEP INSIGHT 참조)
脫석탄 가속…전력산업 개편 적기
그러면 전력산업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라 발전부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발전부문은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분할’했으나 이제 매각은 중단됐고 오히려 탄소중립을 위해 노후 발전기를 철수하고 있다. 애초의 분할 목적이 상실됐으므로 당연히 원복(한수원+석탄발전 5사 통합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원복하더라도 바뀐 패러다임을 활용하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기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11월 탄소중립 비전 ‘ZERO for Green’을 선포해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문제는 석탄발전 퇴출을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발전기별 퇴출 기준을 투명하게 정하고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예측성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발전 5사가 분리된 상태보다는 통합 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발전기별 퇴출 순서는 설계 수명, 경제성, 환경성(발전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 송배전 여건, 지역 편재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되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마찬가지다. 협력사(비정규직) 직원의 직업 전환도 보장해주고 예측성을 높여줘야 한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건설하고, 재생에너지도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발전 5사에 분산된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합 추진해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 사업은 석탄발전소 퇴출에 따른 직업 전환과 연계해서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근무자가 언제 어느 곳으로 옮기게 되고, 따라서 본인은 어떤 직업전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투명하게 결정하고 예측성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전 5사를 통합해 퇴출과 전환을 체계성 있게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석탄발전소 퇴출과 LNG발전 신규 가동에 따른 전환배치가 소진돼 2024년부터 예상되는 일자리 쓰나미는 배전부문 분할 및 민영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발전 공기업 ‘방만 경영’ 바로잡을 기회
다음으로 이 같은 통합 과정이 발전사업의 잘못된 경영 행태를 바로잡고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발전소의 김용균 씨 죽음을 계기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구성됐다. 특조위 보고서를 보면, 민영화를 전제로 수직분리한 외주화가 어떤 효과를 이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초 한전에서 발전, 송배전, 판매사업을 일괄 수행하고, 정비사업은 한전 자회사(1차 협력사)인 한전KPS가 독점 수행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사업도 한전 자회사(1차 협력사)인 한전산업개발이 도급을 받아 수행해 왔다. 그러나 2001년 민영화를 전제로 한 발전사 분할 이후 생산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1차 협력사 주관으로 추가로 공개 입찰이 됐다. 문제는 비용 절감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발전사가 협력사에 지급하는 도급단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하청 협력업체들의 미숙련, 저임금, 불안전 고용은 늘어났고, 그 대표적인 사고가 김씨의 죽음이었다. 특히 운전업무는 전형적인 사내하청으로 실질은 파견관계(불법파견)였던 것이다. 도급단가의 지속 상승으로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은 상장사 평균(6%)의 배가 넘는 15% 수준을 보였는데, 이 기간 인건비는 원계약서 대비 50%만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협력사주의 고수익은 모두 소비자가 부담한 것이다. 당초 명분과 달리 비용은 상승시키면서 미숙련, 저임금, 불안전 고용은 방치하는 외주화는 발전사 통합을 계기로 원복시켜야 한다.

발전사 통합이 미래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계기성은 ‘신입사원부터라도 직무급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동일 회사 다른 임금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을 직무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노동자는 자신에게 맞는 직무와 근무조건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정규직 없이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숙련,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대재해의 많은 요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통 부족에서 일어나는데, 직무 선택을 자원해 입사할 경우 출신성분(소속신분)에 따른 배타적 집단 형성을 해소할 수 있다. 입사와 동시에 직무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지금의 호봉제는 바뀐 생태계에 맞지 않는 임금체계라고 할 수 있다. 직무 간 이동성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고임금 업무로의 이동 욕구도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근무시간도 주 52시간 획일제에서 벗어나 요일별, 시간별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따뜻한 복지이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진정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적자 나도 보상…정책 손질해야
통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비용 절감이다. 당초 발전사를 분할해 경쟁시키면 수익성 창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01년 구조개편 설계대로 발전사 간 경쟁이 이뤄져 전력 도매시장이 형성되고, 배전분할이 이뤄져 판매 경쟁을 통한 소매시장이 형성되면 소비자 효용도 올라가고 가격도 인하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러한 시장기능(가격신호)은 자원배분의 합리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발전사 분할과 동시에 중단됐고, 전기요금은 총괄원가주의에 따라 무조건 한전의 모든 비용(배당금, 법인세, 적정이윤을 포함한 비용)을 보상해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발전사들은 원가 절감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특조위 보고서에 따르면 발전원가의 80~90%를 차지하는 연료비가 글로벌 단가를 웃돌고 있다. 종전에는 통합구매로 구매 파워가 있었으나 분할 이후 경쟁구매로 연료 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협력사의 과도한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분할로 인한 발전 5사의 중복되는 인건비와 간접비도 아무런 규제 없이 전기요금에 그대로 반영된다. 고위 퇴직자들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 회사에 재취업하는 품앗이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하고서도 소비자에게는 콩값(연료비)보다 두부(전기) 값이 싸니 전기요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총괄원가주의에 따라 달라는 대로 다 주게 돼 있는 구조가 현 전기요금 체계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분산전원 실현, 이를 위해서는 전력산업과 4차 산업혁명의 융합은 피할 수 없이 같이 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을 가는 데 극복해야 할 에너지 전환과 직업 전환의 허들은 발전 5사 통합, 배전부문 민영화와 연계해 정의로운 전환과 미래 준비가 싱크로나이즈되도록 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은

현대제철 기획실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화학공학,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 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오너 경영인을 보좌하면서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다’라는 그들의 철학을 배우게 됐다. 이런 배움과 회사 업무를 통해 접한 에너지·환경·안전·노사·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을 갖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위원(2013),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2020)을 지냈으며 한국ESG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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